최영훈 medchoi@naver.com
빛이 머리카락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뇌가 키운다?
세계모발학회가 다시 주목한 8년 전 연구
대만 연구진, 2018년 PNAS 논문에서 시작된 '눈-뇌-모낭' 연결고리
WCHR 2026에서 적색광·신경회로 통한 모발 재생 메커니즘 추가 발표

사진설명: 대만 국립대학 Sung-Jan Lin 교수 연구팀은 빛이 모발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가 두 가지라고 설명했다. 적색광은 두피와 모낭에 직접 작용해 모낭 줄기세포를 활성화하며, 청색광은 눈과 뇌, 교감신경을 거치는 신경회로를 통해 간접적으로 모낭 줄기세포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탈모치료에 사용되는 레이저와 LED 치료는 일반적으로 빛이 두피에 직접 작용해 모낭세포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최근 서울에서 열린 제14차 세계모발학회(WCHR 2026)에서는 이러한 기존 개념을 넘어서는 흥미로운 연구가 소개됐다.
대만 국립대학의 Sung-Jan Lin 교수는 「가시광선을 이용한 모낭 줄기세포 자극: 직접 효과와 신경회로를 통한 간접 효과」라는 발표를 통해 빛이 단순히 모낭에 직접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눈과 뇌, 신경계를 통해서도 모발 성장을 조절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사실 이 연구는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 시작은 2018년 발표된 한 편의 논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8년 PNAS(미국국립과학원회보) 논문이 던진 충격적인 질문
2018년 Sung-Jan Lin 교수 연구팀은 세계적인 학술지 PNAS에 「External light activates hair follicle stem cells through eyes via an ipRGC–SCN–sympathetic neural pathway」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연구진은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빛을 직접 받지 않는 모낭 줄기세포는 어떻게 계절의 변화를 감지할까?"
모낭은 피부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햇빛을 직접 인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많은 동물들은 계절에 따라 털이 자라고 빠진다.
연구진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고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빛이 눈으로 들어오면 망막의 광감지세포(ipRGCs)가 이를 인식하고, 신호는 뇌의 생체시계 중추인 시교차상핵(SCN)으로 전달된다.
이후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피부에서 노르에피네프린 분비가 증가하고, 최종적으로 모낭 줄기세포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빛 → 눈 → 뇌 → 교감신경 → 모낭 줄기세포
라는 새로운 생체 신호 전달 경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연구진은 청색광(Blue Light)에 노출된 실험동물에서 이러한 효과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8년 뒤 세계모발학회에서 이어진 후속 연구
이번 WCHR 2026 발표는 2018년 연구를 더욱 확장한 내용이었다.
Lin 교수는 적색광(red light)이 모낭 줄기세포를 직접 활성화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적색광은 녹색광이나 청색광보다 성장기(anagen) 진입을 더욱 효과적으로 유도했으며, 모낭 상피세포를 직접 자극하는 동시에 진피유두세포의 FGF7 분비를 증가시켜 모발 성장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적색광은 두피에서 직접 작용하는 경로를 가진다는 의미다.
반면 청색광은 2018년 논문에서 밝혀진 것처럼 눈과 뇌를 거치는 신경회로를 통해 간접적으로 모낭 줄기세포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결국 연구진은 빛이 두 가지 방식으로 모발 성장에 관여할 수 있다고 제안한 셈이다.
첫 번째는
"빛 → 모낭"
이라는 직접 경로.
두 번째는
"빛 → 눈 → 뇌 → 신경 → 모낭"
이라는 간접 경로다.
탈모치료의 새로운 키워드는 '신경'
이번 발표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적색광 자체보다 교감신경의 역할이다.
Lin 교수는 발표에서 모낭 줄기세포가 β2 아드레날린 수용체(beta-2 adrenergic receptor)를 가지고 있으며, β2 작용제를 국소 적용했을 때 모발 재생이 촉진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추운 환경에서 교감신경 활성도가 높아질 경우 모발 재생이 증가하는 현상도 함께 소개했다.
이는 모낭 줄기세포가 단순히 호르몬이나 성장인자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신경계와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시사한다.
모낭은 피부가 아니라 네트워크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탈모 연구는 DHT와 같은 남성호르몬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이후 줄기세포, 성장인자, PRP, 엑소좀 등이 새로운 연구 분야로 등장했다.
이번 연구는 여기에 또 하나의 축을 추가한다. 바로 신경계다.
모낭은 단순한 피부 부속기관이 아니라 빛과 온도, 생체리듬, 신경계의 영향을 함께 받는 복합적인 생체 네트워크의 일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모발학회에서 발표된 이번 연구는 당장 새로운 탈모치료법을 제시했다기보다 앞으로의 탈모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신호로 평가된다.
어쩌면 미래의 탈모치료는 모낭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모낭과 연결된 신경계까지 함께 조절하는 방향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최영훈 기자(medchoi@naver.com)





